"어머니, 다녀왔어요."
엄마는 대답이 없다.
5년 전부터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알츠하이머라고 확진을 받고 난 후로는 늘 멍한 채로 계신다.
"햄순아, 밥 먹자~."
해바라기씨가 든 봉투를 집어 들자 햄스터들이 쪼르르 모여들었다.
시체처럼 가만히 앉아 있던 엄마도 잠시 햄스터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처음에는 엄마가 심심할까 봐 분양받은 햄스터였다. 두 마리로 시작해서 지금은 마흔 마리가
넘게 북적거리지만 애인도 없이 중년이 되어 가는 나에게는 유일한 행복이 되었다.
하나하나 이름도 붙여 주었다. 제일 늙은 암컷 햄스터가 햄순이고,
그 자식들이 햄봉이, 햄돌이, 햄스터, 햄키 등이다. 그리고 햄순이의 손자 손녀들.
나는 녀석들을 모두 알아볼 수 있다.
햄스터의 밥을 챙겨 주고 나서 소파에 붙박혀 있는 엄마의 옆에 털썩 앉았다.
[카톡]
메시지가 와서 확인해 보니 애니팡 초대였다.
"임 부장은 이 한물간 게임을 아직도 하고 있네. 아이고···."
애니팡은 한때 엄청나게 유행했던 스마트폰 게임이다.
사실 나는 그때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에 해 본 적은 없었다.
"이게 그렇게 재밌는 게임인가?"
딱히 할 일도 없던 터라 애니팡을 다운받았다.
세 판째 플레이를 하다가 문득 시선이 느껴져서 옆을 보니
엄마가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어, 어머니. 이거 해 보실래요?"
나는 엄마에게 스마트폰을 건넸다.
엄마는 화면 속 동물들을 뚫어져라 보더니 잠시 후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저 손가락으로 아무거나 이것저것 건드리는 게 전부였지만
혹시 치매가 호전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조금 들었던 것이다.
다음 날, 나는 바로 신형 스마트폰을 사서 엄마에게 선물했다.
엄마는 하루 종일 애니팡을 했다.
처음에는 엄마가 어딘가에 흥미를 보이는 것 같아 기뻤으나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온종일 동물들이 삐약대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말 그대로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잠은 도대체 언제 자는 건지, 새벽에도 애니팡 소리 때문에 미칠 지경이다.
엄마의 손가락이 날이 갈수록 빨라짐에 따라 동물들도 더욱 가열하게 울어 댔다.
"어머니, 다녀왔어요."
엄마는 죽어 버린 뇌로 동물들과 씨름하고 있을 뿐, 여전히 내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하아···."
집에 들어오며 가져온 우편물을 뜯어보았다. 이번 달 휴대폰 요금은 87만 4370원.
"하··· 씨···."
어쩐지 하루 종일 애니팡만 하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 했다.
나는 내장이 뒤집힐 것 같은 분노를 느꼈다.
동물들은 여전히 삐약삐약 울어 대고 있었다.
"제발 그만 좀 하라고!!!"
나의 절망적인 외침에도 동물들은 여전히 삐약삐약 울어 대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채 베란다 문을 열고 집어던져 버렸다.
휴대폰은 아스팔트에 닿는 순간 개박살이 났다.
저 멀리서 10t 트럭이 달려와 확인 사살을 하고 지나간다.
엄마는 허공에 뜬 두 손을 어쩌지도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더욱 짜증이 나서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생각해 보니 내가 조금 심했던 것 같다.
그깟 80만 원 때문에 엄마 인생의 즐거움을 빼앗아 버린 것이 아닌가.
일단 내 휴대폰으로라도 애니팡을 하게 해 드려야겠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와 보니 엄마가 없었다. 부엌에서 삐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화낸 것 때문에 겁먹고 부엌에 숨어서 애니팡 하고 계셨구나···.’
나는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카톡]
휴대폰 소리가 내 방에서 났다.
어? 그럼 엄마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이상하고 불길한 느낌이 전신을 휘감았다.
"삐약··· 삐약··· 삐약···."
엄마는 입으로 소리를 내고 있다.
"어, 어머니···.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엄마는 최근 몇 년간 보지 못했던 즐거운 표정으로 전자레인지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려 보니 부엌 바닥에 햄스터 집이 뚜껑이 열린 채 널브러져 있었다.
"서, 설마···!"
이윽고, 전자레인지에서 펑 하고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엄마는 함박웃음을 가득 지으며 3년 만에 처음으로 말했다.
"라스트 팡···. 히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