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가 나타나자마자 사방의 수많은 장검들은 그를 향해
쉴 새 없이 몰아쳤다.
촤악ㅡ
ㅡ으악!
살갗을 베어대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집안을
계속해서 울려댔다.
광기가 서린 헨리의 장검은 눈앞의 괴한들을
쉴 새 없이 베어댔다.
살의에 가득 차 광기만이 남아버린 헨리의 눈을
멀찍이서 바라보며 겁에 질린 졸개 몇몇은
현관 쪽으로 도망치기 십상이었다.
그를 멀찍이서 본 헨리는 곧바로 현관 쪽으로
공간이동했다.
촤악ㅡ
헨리가 부리나케 도망치던 졸개들의 앞에 눈 깜짝할 새
나타나 검을 휘둘러 다섯을 순식간에 베어 죽였다.
"내 집에 발 디딘 이상 아무도 살아나가지 못한다."
공간이동을 이용하는 헨리의 모습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여기저기서 나타나 검을 휘둘러 집안을 피로 물들였다.
"모.. 모두 뭉쳐라! 칼을 든 사신이라 생각하고 긴장을
늦추지 마라!"
대장으로선, 자기 부하들의 허를 찌르는 공간이동은
아주 골칫거리였다.
그가 흩어져있는 부하들을 한데 모은 뒤,
집안이 잠잠해졌다.
한 명 한 명 흩어져있는 괴한들을 베어 죽이던 헨리는,
대장의 말에 뭉치는 그들을 보고선 섣불리 나타날 수가
없었다.
원의 형태로 모여있는 졸개들과는 다르게, 그들의 옆에
홀로 당당하게 서있는 대장의 뒤로 헨리가 검을 휘두르며
나타났다.
ㅡ챙!
'이걸 막는다고?'
괴한들의 대장과 검을 맞대고 있는 헨리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갑작스레 뒤에서 공격한 헨리의 검과,
그걸 반응하며 빠르게 막은 대장의 검이 강하게 맞닿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ㅡ챙챙챙!
괴한들의 대장이 쉴 틈을 주지 않으며 검을 계속해서
휘둘렀다.
검의 합이 오고 감에 따라, 지친 헨리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ㅡ챙!
대장은 헨리와 검을 맞댄 채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좀 전까진 움직이면서도 잘만 능력을 사용하더니,
내가 틈을 주질 않으니 사용을 못 하네?
베일까 봐서 능력을 쓸 집중조차 못 하는 거야?"
저 녀석의 말이 딱 맞다.
괜히 이동하려다가 베일까 봐서 공간이동을 사용할
집중조차 못 하고 있다.
이 자식 너무 강하다.
순수 합으로 봤을 때, 내가 계속 밀린다.
일단 틈을 봐서 다시 나타난 다음,
저 대장 놈의 시선을 졸개들에게 분산 시켜야겠군.
ㅡ카캉!
헨리가 맞댄 검을 밀쳐내 뿌리쳤다.
그 후 헨리가 공간이동을 사용하려는 찰나였다.
ㅡ 촥!
크윽..
헨리가 검에 베이는 순간 공간이동 능력을 사용했다.
그가 능력을 사용하여 이동하는 순간보다 대장의 검이
조금 더 빨랐던 것이다.
"여.. 여긴 어디야!"
갑자기 처음 보는 장소로 이동된 대장이 당황하며 외쳤다.
곧바로, 그 당황함도 잠시였던 대장이 헨리의 산발 머리를
움켜쥐며 말했다.
"네가 이동할 때 네 몸에 닿은 것은 무엇이든지
같이 이동되는 거구나?"
검을 쥐고 있던 팔이 베여 반대 손으로 그 상처를
움켜쥐고 있던 헨리가 머리채를 잡힌 채 대장에게
두 눈의 시선이 고정됐다.
"그래 네 말이 맞다. 하지만 걱정 마라. 내가 너를 두고
능력을 사용해 도망칠 일은 추호도 없을 테니."
"아하하, 어이없네? 피지컬 차이가 이렇게나 많이 나서
고개도 치켜들고서 마주 보고 있는 주제에?"
"이렇게 검으로 승부를 볼 때는, 작은 키의 짧은 팔
길이가 너같이 키만 큰 멀대를 이길 방법이 아주 많지."
헨리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쓰라린 상처를 움켜쥔 팔을
내린 채 양손으로 검을 쥐어 본인의 앞으로 수직으로
뻗어 올렸다.
헨리 본인의 미간 앞으로 치켜 세워지는 검이,
대장이 잡은 본인의 머리칼을 싹둑 베었다.
"쯧, 아깝구먼. 손목을 날려버리려 했거늘."
헨리가 혀를 차 댔다.
재빠르게 헨리의 머리채를 잡은 손을 빼낸 대장이 양손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검 손잡이에 천천히 포개며 말했다.
"네 마누라처럼 너도 갈기갈기 찢어줄게."
대장의 말에 동요하여 흥분한 헨리가 검을 냅다 휘둘렀다.
"으아아!! 이런 개 같은 자식이!!"
헨리가 한껏 화가 나 감정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를 본 대장은 한쪽 입꼬리만 살짝 올려 썩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ㅡ챙챙!
검을 맞대며 합을 겨루던 대장은 승리를 확신하는 웃음을 지었다.
이 자의 검에는 분노와 한이 한껏 서려있다.
그렇기에 검의 힘과 무게는 아주 무겁다.
하지만, 그 분노 덕에 검의 방향이 훤히 보이는군.
촤악ㅡ
대장이 상체를 옆으로 힘껏 숙여 헨리의 복부를 베었다.
하지만 헨리는 베인 상처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대장에게 달려들었다.
대장이 한쪽 무릎을 굽힌 채, 숙인 상채를 힘껏
들어 올렸다.
들어 올린 상체와 함께 양팔도 한껏 치올려졌다.
ㅡ카앙!
헨리가 베인 뒤 곧바로 내리찍는 검을 대장이
가까스로 막았다.
땅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양팔을 치올려 검의 양 끝을
잡고 있는 대장의 옆으로 누운 검이 헨리의 내리찍은
검과 맞닿아있다.
"너무 단조로워서 지겨울 지경이야"
언뜻 봐도 헨리의 검을 가까스로 막은듯한 그가 여유로운
말을 내뱉으며 검의 날을 잡고 있는 손을 내려
가운뎃손가락을 헨리의 면상 앞에 펼쳐 보이며
말을 이었다.
"내가 무릎을 꿇어도 너랑 눈높이가 같네?
도대체 네가 어렸을 땐 부모님이 뭘 먹이면서 키운 거냐?
아, 혹시 부모님이 안 계셨나?
곧 집에 돌아올 네 아들의 미래처럼.... 키킼ㅡ"
대장의 말을 듣고 당황한 헨리는 눈썹이 치켜솟으며 눈이
땡그래졌다.
"아.. 아들.. 내 아들!"
대장의 눈에 초점을 맞추던 헨리의 눈이 아들의
생각으로 정신이 팔려 먼 산을 향할 때,
대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촤악ㅡ
촤악ㅡ
이미 피를 많이 흘린 헨리가 또다시 여러 번 깊이 베였다.
커헉!
챙ㅡ
손아귀의 힘이 풀린 그는 손에서 검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검을 잡은 승부에는 모든 감정을 내려놓고 임해야 너의
그 불필요한 감정에 스스로 베이지 않을 텐데?
하지만 지금 깨닫기엔 좀 많이 늦은 것 같네?"
허억.. 허억..
온몸이 피범벅인 헨리의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그는 힘없이 무릎을 꿇은 채로 양 팔은 들지 못하고
땅에 손끝이 닿은 채 온몸을 후들후들 떨고 있다.
"대체..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야.."
헨리의 물음에 대장이 헨리의 산발 머리를 또다시
낚아채며 말했다.
"세간에는 소문이 있었어.
신의 능력을 지닌 초능력자가 등장했다는.
그런데 웃긴 게 뭔지 알아?
다들 그 초능력자를 잡겠다고 혈안이 됐어.
그 사람을 죽이면 그 능력을 빼앗아온다는
소문이 돌았거든."
헨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양손을 올려 대장의
멱살을 잡고서 말했다.
"사람들이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을 믿었다는 게냐!
나는 그렇다 치고 내 가족은 왜 죽인 게야!"
ㅡ 키키킼!
"능력이 계승된다는 게 헛소문인지 아닌지는
직접 확인해 보면 될 일.
네 아내를 죽인 건, 그냥 순전히 재미일 뿐이야!
팔팔하게 살아있는 생명을 앗아가는 것만큼..
가슴 뛰고 흥분되는 일은 없거든."
"이.. 이런 미친놈.."
헨리가 분노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이를 꽉 물었다.
턱에 어찌나 힘을 줬는지, 그의 입에서 이를 갈아대는
소리와 함께 이 사이에선 피가 세어 나왔다.
까드득ㅡ
헨리가 대장의 멱살을 잡은 후들후들 떨리는 팔을
털썩 바닥에 내린 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잘 생각해 봐.
내가 능력을 사용하여 도망치지 않겠다고 했지만,
너를 죽이는 데에 능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말을
한 적은 없다."
힘없이 흙바닥에 꿇어앉아있던 헨리와, 그의 머리털을
잡고 있던 대장의 시야 앞이 눈 깜짝할 사이에 전환됐다.
그들이 걸어 다닐 균형을 잡아주던 든든함 버팀목인
땅바닥은 이미 저 까마득한 아래에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들의 눈앞에 한순간에 펼쳐진 아름다운 구름들과,
시야에 한가득히 담기는 수많은 나무들과 건물들.
하지만 아름다움도 잠시, 그들은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대장은 이미, 잡고 있던 검을 공중에 날려보낸 채
안간힘을 다해 양손으로 헨리의 머리털을 놓치지 않으려
부여잡고 있다.
나는 이 머리털을 놓치는 순간, 그대로 곤두박질친다..
이 자식은 죽지 않으려면 다시 이동해야 한다.
절대 놓쳐선 안된다!
공기의 저항으로 거리가 멀어질 그들을 서로 이어주는 건
대장이 잡고 있는 헨리의 머리털뿐이었다.
힘이 다 빠진 헨리가 안간힘을 다해 제 머리 쪽으로
팔을 뻗어 양손을 움켜쥐었다.
그의 움켜진 양손에는 그가 바닥에 떨어트렸던 검이
쥐어졌다.
"내가 사람은 못 옮겨도 물체는 이동시킬 수 있거든."
힘이 부친 헨리가 대장에게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과연 사람이 고도 1000피트에서 맨몸으로 추락하면
몸이 터질까!?"
헨리는 말소리가 묻혀 어차피 잘 들리지 않을 대장에게
소리치며 말했다.
헨리의 손에 쥐여진 검의 칼날은,
대장이 잡고 있는 헨리의 머리칼에 닿아있었다.
그는 대장이 잡은 자신의 머리칼을 한 움큼 잘라내며,
칼을 손에서 냅다 놓고선 소리쳤다.
"터지는지 안 터지는지 나도 잘 모르겠군!
하지만 저세상으로 떠나는 너는 곧 알게 될 게야!"
"으아아악!!"
헨리가 괴성을 지르며 점점 멀어져 가는 대장을 바라보며
가운뎃손가락을 펼쳤다.
이윽고 헨리는 바닥으로 다시 이동하고선 저 멀리서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대장을 보며 혼잣말했다.
"퉷이다! 한주먹 거리도 안되는 게!"
으윽..
온몸이 성한 곳이 없는 헨리가 신음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자신의 몸 상태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고, 돌볼 여유조차 없었다.
유치원을 다녀오는 자신의 아들과, 아들이 타고 올
통학버스의 모든 사람들이 위험했기 때문이다.
"어서.. 어서 가야 해.."
그가 곧바로 공간이동을 하여 집으로 이동했다.
"헉..! 이게 무슨..?"
긴장을 하며 공간이동을 한 헨리가 본 눈앞의 광경은
너무나도 참혹했다.
자신이 나타나자마자 칼을 들고 맞이할 줄 알았던
수백의 괴한들이 온 집안을 피로 물들인 채로
잔인하게 죽어있었다.
아무래도 저기 현관 앞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 같은
괴한을 베는 저 남자의 소행인 것 같았다.
"커헉!"
괴한이 쓰러지고, 그를 벤 남자가 깊은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보려 몸을 틀었다.
"휴.."
그가 뒤를 돌았다.
그의 얼굴을 본 나는 너무 놀라서 까무러칠 뻔했다.
"헉!"
뒤를 돌아본 그는 너무 앳돼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것 때문에 놀란 게 아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고블린처럼 못생긴 게야?
"누.. 누구시오!"
헨리가 당황하여 소리쳤다.
"아! 안녕하세요. 당신이 헨리인가요?"
"맞.. 맞소만! 누구시냐니까!"
저 청년은 이미 헨리를 알고 찾아온 눈치였다.
청년은 헨리에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블라디미르 이바노프라고 합니다."
이바노프는 해맑은 미소조차 내 미간을 구길 정도로
심각한 외모였다.
그게 황제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